책소개
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무명의 주드(Jude the Obscure)≫는 1895년에 출판되었으며 하디의 마지막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던 한 주교는 사악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책을 벽난로 속으로 집어 던졌고, 영국의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이 소설이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디는 자신의 이전 소설들에서 전개했던 사회 비판적 주제들을 이 소설에 집약적으로 담는다. 그는 결혼, 성, 사랑, 교육, 종교 등 중요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즉, 사촌 사이인 주드와 수의 사랑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끼리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이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 주드 같은 노동자가 품은 대학에 대한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보통 사람들에게 종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등의 물음을 던지고 있다.
소설의 서두에서 하디는 ‘대학은 무엇인가? 과연 대학은 척박한 현실에서 주드를 구해줄 이상향인가?’라고 독자에게 묻는다. 주드가 동경하던 크라이스트민스터는 실제 지명인 옥스퍼드를 하디가 가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겪게 되는 대학의 실상은 그가 꿈꾸던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그곳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도시가 존재하는데, 대학 담장 안의 학자들과 성직자들의 도시와, 대학 담장 밖의 무지한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도시다. 이는 대학 문이 노동 계급 사람들에게는 닫혀 있음을 의미한다. 주드가 대학 입학을 거절당하고 좌절하는 장면을 통해 하디는 대학의 배타성을 비판한다.
또한, 하디는 독자에게 ‘과연 결혼 제도가 바람직한 것인가, 불행한 결혼이 유지될 필요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아라벨라와 주드의 불행한 결혼 생활, 필롯슨과 수의 불행한 결혼 생활, 주드 가문의 불행한 결혼 일화들을 통해 독자는 결혼 제도에 회의를 품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함께 살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하디의 생각을 주드와 수의 동거를 통해 엿볼 수 있다. 특히 수는 당대 신여성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아 성취와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며 결혼의 틀을 거부한다. 수가 추구하는 삶의 형태는 기존의 결혼과 가족 개념을 수정해야 하는 급진적인 것으로, 수는 당대의 성 이데올로기나 관습뿐만 아니라 성관계까지 거부할 권리를 주장한다. 이러한 수를 불감증 환자로 보는 비평가들도 있지만 모든 가치관이 과도기적 성격을 지녔던 당시의 세태를 고려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작품 전체를 통해 하디는 ‘관습을 넘어서는 삶은 이처럼 성취되기 어려운 것일까?’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서 관습과 제도의 압력은 벗어나기 어려운 것으로, 주드와 수에게 가해지는 시련은 가혹하다. 일단 결혼이라는 사회 관습을 거부한 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으며 특히 교회와 관련된 일자리는 불경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한다. 하디는 이런 일화를 통해 종교의 진정한 의미나 역할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한군데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이들의 모습은, 현실의 삶에서 이들이 얼마나 수용되기 어려운가를 보여준다. 하디는 주드와 수가 떠도는 고장에서 이들처럼 예민하고 선진적인 사람들이 관습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죽거나 다시 관습의 틀로 돌아가는 비극을 마치 영화 장면처럼 담아낸다. 하디는 이들의 성격을 아주 섬세하게 제시하면서 이러한 비극을 가져온 사회 제도나 관습의 부당함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극도의 음울한 장면, 즉 주드의 아들 ‘꼬마 영감’의 동반 자살 사건 등의 장면은 전반적으로 비극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도 무척 비극적이다. 학문도 목사의 꿈도 포기한 주드는 수마저 떠나보내고, 수도 불행한 결혼의 틀로 돌아간다. 수는 사랑하지 않는 남편에게 돌아가고, 주드는 아라벨라에게 돌아가는 결말은 어쩐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소설 전체에서 신이나 자연은 주인공들에게 위안을 주거나 힘을 주지 못한다. 자연은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비웃고 인간의 열망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러나 하디는 인간이 지닌 섬세한 감정이나 열망 자체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며, 결국 주드는 모든 것에 실패했지만, 마지막까지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디는 주인공들의 비극적 결말 이면에, 불합리한 제도와 관습을 넘어서려는 그들의 치열하고 감동적인 삶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메리그린에서 크라이스트민스터, 멜체스터, 올드브리컴으로 이어지는 주드와 수의 여정은 그들의 사랑과 꿈의 성취를 위한 여정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그 자체만으로 값진 것이다. 또한, 당시에는 파격적인 관점에서 성, 결혼, 사회 관습을 복합적으로 조망한 하디의 뛰어난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9세기 말의 영국소설이지만 ≪무명의 주드≫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와 이어지는 현실성을 지닌 놀라운 작품이다.
200자평
≪무명의 주드(Jude the Obscure)≫(1895)는 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1840∼1928)의 마지막 소설로, 사촌 사이인 주드와 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다. 이 책을 읽던 한 주교는 사악한 책이라고 생각해서 책을 벽난로 속으로 집어 던졌고, 영국의 도서관에서 금서로 지정될 정도로 당시에는 매우 파격적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 성, 결혼, 사회 관습을 복합적으로 조망한 하디의 뛰어난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전체 6부 중에서 각 부의 줄거리와 주제를 고려해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한 번역서다.
지은이
토머스 하디는 ≪테스≫와 ≪귀향≫으로 유명한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극작가다. 그는 1840년 6월 2일 도체스터 근방 하이어보켐턴에서 석공인 아버지와 독서를 좋아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작품들은 대부분 영국 남부의 웨섹스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는 그의 고향 도체스터를 모델로 한 것이다. 당시 도체스터는 농촌지구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하긴 했으나 다소 외진 곳으로, 하디의 어린 시절에는 철도도 들어오지 않았다. 따라서 농촌 풍경, 농촌 사람들의 미신이나 풍습을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경험은 훗날 그가 소설을 쓰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1867년 후반에 첫 소설인 ≪가난뱅이와 귀부인≫을 썼다. 1870년 봄부터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해 ≪광란의 무리를 떠나≫로 점차 국내외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대표작 ≪테스≫와 ≪무명의 주드≫를 비롯해 ≪숲의 사람들≫, ≪귀향≫,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등을 발표했다.
옮긴이
장정희는 부산대학교 문리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대학원 영문학과에서 버지니아 울프 연구로 문학 석사 학위를, 토머스 하디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세기영어권문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광운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광운대학교 동북아대학 문화산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토머스 하디, 삶과 문학세계≫, ≪프랑켄슈타인≫, ≪선정소설과 여성≫, ≪토머스 하디와 여성론 비평≫, ≪빅토리아 시대 출판문화와 여성작가≫, ≪19세기 영어권 여성문학론≫(공저), ≪페미니즘과 소설읽기≫(공저) 등이 있다. 역서로는 ≪영국소설사≫(공역) 등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메리그린에서
제2부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제3부 멜체스터에서
제4부 섀스턴에서
제5부 올드브리컴과 여러 곳을 떠돌며
제6부 다시 크라이스트민스터에서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수와 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오래전 우리가 최상의 상태였을 때 우리 정신은 맑았고 진리에 대한 우리 사랑으로 두려움이 없었어요. 하지만 우린 시대를 앞섰던 거예요! 우리 생각들은 50년 정도 앞섰기에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죠. 그래서 그 생각들은 저항에 부딪혔어요. 그게 그녀에겐 반작용을 일으켰고 저에겐 무모함과 파멸을 가져다줬어요!”